[이만열 칼럼] 다시 ‘시일야방성대곡’을 떠올린다
1905년 11월20일 <황성신문>은 논설 ‘시일야방성대곡’(是日也 放聲大哭)을 5조약 ‘체결’의 전말과 함께 발표했다. 며칠 뒤에는 <대한매일신보>도 영문(英文)과 함께 그 내용을 전재했다. 국한문 500여자로 된 이 논설은...
2019-11-21 18:17:00시일야방성대곡 - 2019.12.12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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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5년 11월20일 <황성신문>은 논설 ‘시일야방성대곡’(是日也 放聲大哭)을 5조약 ‘체결’의 전말과 함께 발표했다. 며칠 뒤에는 <대한매일신보>도 영문(英文)과 함께 그 내용을 전재했다. 국한문 500여자로 된 이 논설은...
2019-11-21 18:17:00◇ 이동형> 장지연 같은 경우에는 우리 학교 다닐 때 시일야방성대곡, 독립운동가로 배웠는데요. ◆ 방학진> 그렇습니다. 장지연 같은 경우에는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죠.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고, 장지연 이름을 딴...
2019-12-04 21:02:00현대판 ‘시일야방성대곡’이라 할 수 있었지요. 선언의 내용과 강조점은 다양하지만 관통하는 핵심은 다르지 않습니다. 대한민국은 군주국이 아니라,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국임을 준엄하게 선포하는 것이며...
2019-11-27 10:43:001905년 11월 20일 장지연, <황성신문>에 논설 '시일야방송대곡' 게재 ▲ 1905년 11월 20일, <황성신문(皇城新聞)>에 장지연이 쓴 논설 '시일야방성대곡(是日也放聲大哭)'.아래 칸에는 ‘5조약청체전말(五條約請締顚末)...
2018-11-20 11:51:00대한제국 시대 을사늑약을 규탄하는 ‘시일야방성대곡’까지 썼으나 훗날 ‘친일인명사전’에 등재된 언론인 장지연이 엮은 열전에 나오는 ‘효녀 부랑의 이야기’가 원전이라고 한다. 그러면서 국립발레단은 ‘한국의...
2019-11-10 22:01:00실제로 황성신문에 '시일야방성대곡'을 쓴 장지연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돼 1983년 '위암 장지연 선생의 묘'가 경남문화재자료 제94호로 지정됐다. 하지만 식민지 지배 정당화와 친일행각을 벌인 것이 드러나...
2019-10-30 17:05:00(정약용, '약암 이재의에게 보낸 편지') 1902년 장지연('시일야방성대곡'의 저자)이 처음으로 목민심서를 출간했다. 그 전에는 지방 관청에서 저마다 만든 필사본밖에 없었다. 1936년 정약용 서거 100주년에 즈음해 조선...
2019-10-22 03:04:002018년 3월 30일, 경희대학교 맥도널드점이 폐점했다. 어찌 이날을 울지 않고 지나가랴? 온통 맥도널드가 널려 있는 세상에 맥도널드가 없는 동네라니 우리는 노스트라다무스가 되었다. 성소가 없는 동네에서는 손가락이나...
2018-11-05 15:15:00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‘오늘 목 놓아 통곡하노라(是日也放聲大哭·시일야방성대곡)’. 1905년 11월 20일 장지연이 쓴 황성신문의 논설 제목이다. 을사늑약의 부당성과, 이에 찬성하거나 막지 못한 조정...
2019-09-30 12:11:00[한겨레21] [만리재에서]한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이들 가운데 <황성신문> 주필이던 장지연(1864~1921)이 1905년 11월20일치에 쓴 ‘시일야방성대곡’(是日也放聲大哭)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. 장지연은 이후...
2017-09-04 15:07:00